[국제]신임 일본총리 ‘스가 요시히데’ 누구인가?

근 30년만의 ‘무(無)파벌, 비(非)세습’ 총리

소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0/11/14 [23:33]

[국제]신임 일본총리 ‘스가 요시히데’ 누구인가?

근 30년만의 ‘무(無)파벌, 비(非)세습’ 총리

소정현 기자 | 입력 : 2020/11/14 [23:33]

8여년만의 신임총리 ‘5대파벌 지지 압도적 당선

정계 2인자 관방장관 출신 아베노선 추종할 듯

 

연내 중의원 해산, 조기총선 치르면 색깔 낼 수도

한일관계 강경일변 지양, ‘대화와 타협해야 상생

 

▲ 제99대 총리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


99대 총리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총재

 

일본 하원 격인 중의원은 지난 916일 본회의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71) 자민당 총재를 제99대 총리로 선출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에서는 집권당의 총재가 일본 총리가 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에서 행정수반인 총리가 바뀌는 것은 제2차 아베 정권이 출범한 201212월 이후 78개월여 만이다. 스가 총리는 이날 중의원과 참의원(상원)에서 각각 압도적 득표를 얻은 후 일왕의 임명식을 거쳐 총리직에 취임했다.

 

앞선 914일 스가 신임 총재는 중·참의원 양원 의원과 전국 자민당 지부연합회 대표 등 53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70% 이상의 지지를 얻어 압승을 거뒀다. 여기서 스가 장관은 전체 535표 중 377표를 얻었다.

 

그는 국회의원 394표 가운데 288, 지방 당원 표 141개 가운데 89표를 확보하며 70.6%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 자민당 차기 총재로 당선됐다. 스가 장관과 함께 후보로 나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은 89,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은 68표를 얻는 데 그쳤다. 출마 의사를 밝히기도 전에 자민당 7개 파벌 중 주요 5개 파벌이 지지를 결정한 터여서 선거는 예상된 대로 끝났다.

 

▲ 한일 현안에 대한 접근은 경협등 실질협력과 과거사 투 트랙이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취임 전날인
15일 스가 총재는 정조회장에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선거대책본부장(호소다파), 총무회장에 사토 쓰토무’(佐藤勉) 전 총무상(아소파), 선거대책위원장에 야마구치 다이메이’(山口泰明) 조직운동본부장(다케시타파)을 각각 임명했다.

 

다만, 당의 ‘2인자로 불리며 인사자금관리선거 공천등을 책임진 간사장에 대표적 지한파 인사인 니카이 현 간사장이 유임된 것은 경색된 한일 관계 개선 가능성에 긍정적 요소로 평가된다. 스가 총재는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국회대책위원장(이시하라파)도 유임시켰다.

 

간사장, 정조회장, 총무회장, 선대위원장은 4으로 불리는 자민당 핵심 요직이다. 무파벌 스가 총재는 탈파벌을 외쳤지만 결국 총재 선거에서 자신을 성원한 파벌의 인사를 핵심 요직에 골고루 배치하는 보은 인사를 했다. 파벌의 영향력이 지대한 일본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916, 스가 신임 총리는 국회 지명선거를 마친 뒤 연정 파트너인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와 여당 당수 회담을 열고 관방장관을 통해 새 내각의 각료 명단을 발표했다.

 

스가 총리가 내건 정권 공백 최소화 공약대로 전체 장관 20명 중 11명이 직전 아베 내각에 참여했던 인사이다. 재무성, 외무성, 경산성을 비롯 주요 8개 부처 장관이 유임됐으며 신임 관방장관과 행정개혁상, 총무상은 자리를 이동했다. 이번 개각에서 스가 총리는 아소 다로부총리 겸 재무상(79)을 비롯해 모테기 도시미쓰외무상(64), ‘가지야마 히로시경산상(64) 등 핵심 장관을 모두 유임시켰다.

 

총리 관저의 이인자면서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는 관방장관에는 관방부 부()장관 출신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64) 후생노동상이 최종 낙점되었다. 특히 방위상에는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61) 자민당 중의원 의원이 발탁됐다. 기시 방위상은 출생 직후 외가로 입양되면서 성이 바뀌었다. 대학 입학 후에야 자신이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첫 내각 인사에서 내각 구성원 중 일본 우익의 구심점인 일본회의소속은 16명으로 전체 구성원(21)76.2%, 자민당 소속(20)80%. , 우익 본색을 분명히 한 셈이다.

 

아베 정권의 정신적 기반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회의는 1970년대 일왕의 재위 기간에 사용하는 연호(年號) 합법화 운동을 바탕으로 한 우익 운동이 그 뿌리다. 신흥 종교인 장생의 집과 우익 학생운동 출신 인사들이 뭉쳐서 일본을 지키는 모임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로 활동하다가 1997530일 일본회의로 통합됐다. 왕실 존중, 국방 충실, 애국 교육, 헌법 개정, 가부장적 가족관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 조기 극복을 위해 기존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인사를 통해서도 재확인한 셈이다. 경제정책에서는 아베노믹스를 이어갈 것으로, 대외관계에서는 ·일 동맹중심으로 역시 아베 정부의 외교노선을 답습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경색 국면의 한일 관계 또한 당분간 해빙기류를 섣불리 기대할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파벌 비()세습스가 총리

 

일본 언론들은 스가 장관이 근 30년만의 ()파벌, ()세습총리가 될 것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파벌도 없고 부모로부터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를 외조부로 둔 아베 총리와 대조적이다.

 

▲ 신임각료들 왼쪽부터국토‧교통대신 아카바 카즈요시(赤羽一嘉), 외무대신 모테기 도시미츠(茂木 敏充),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총리대신, 부총리 겸 재무대신 아소 타로(麻生太郎), 도쿄올림픽 대신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아베정권에서 제
2인자 관방장관을 지낸 스가신임 총리는 늘 아베의 분신 혹은 아베의 그림자로 간주되었다. 스가 총리가 47세에 처음으로 중의원 의원이 됐을 때 그가 훗날 총리로 지명될 것으로 알아본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스가는 1948126, 부농의 아들로 일본 혼슈 아키타(秋田)현 오가치군 오가치정(현재 유자와시)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 2, 남동생 1명이다. 아버지 스가 와사부로는 남만주철도의 직원으로서, 당시 만주국의 수도였던 퉁화(通化)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이하였다.

 

스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東京)로 상경했다. 골판지 공장에서 일해 입학금을 모아 호세이(法政) 대학에 입학했다. ‘밑바닥에서 고생하며 올라온인물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스가는 대학 졸업 후 민간 기업을 거쳐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郎) 중의원 의원 밑에서 비서로 11년간 활동했다. 이어 1987요코하마시’(横浜市) 니시수 선거구에 출마해 시의원으로 당선된 스가는 2, 8년을 지낸 후 199648세 나이로 제41회 중의원에 요코하마시(가나가와현 제2)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드디어 관방장관을 거쳐 일본 총리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비세습 정치인의 대표적 인물 스가는 헤이세이(平成) 연구회(현 다케시타파), 고치카이(宏池会·현 기시다파)를 거쳐 2009년부터 무파벌로 활동해왔다.

 

2006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를 적극 지원하였고, 이후 아베 신조가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로 취임했다. 그리고 아베 신조는 당시 4선에 불과했던 스가 요시히데를 총무대신(우정민영화 담당대신 겸직)으로 임명하였으며, 이로써 스가는 첫 입각을 이룬다.

 

특히 201212월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의 관방장관으로 기용돼 아베 총리와 함께 일본 최장수 총리-관방장관환상의 콤비를 이뤘다. 이처럼 오랜 기간 아베 정권에서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의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스가 총리가 큰 틀에서 아베 정권을 계승하게 될 것은 자연스런 예측이다.

 

2인자 관광장관 출신 스가 총리

 

관방장관은 일본 내각의 일원으로 한국으로 치면 장관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청와대 정책실장과 비서실장 역할을 겸하고 있어 장관 중의 장관으로 불린다. 특히 일본에서 정부 대변인은 관방(官房)장관이다. 관방장관의 업무 중 하나는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 정례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른 업무도 많다. 총리를 그림자처럼 보좌하고 내각이 결정한 사항을 행정 각부가 제대로 시행하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내각을 대표해 국회와 의사소통하는 역할도 맡는다.

 

관방장관은 총리의 복심으로 핵심적인 업무를 하다 보니 종종 차기 총리 1순위로 부각되었다.직전 총리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역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시절인 200510월부터 약 1년간 관방장관을 지냈다.

 

신임총리 스가 요시히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치력이 뛰어난 뼛속까지 2인자. 퇴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곁에 머물고 최종 후계자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철저한 ‘2인자 정신때문이라는 평가이다. 스가 총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도우며 2인자로 살아온 동생 도요토미 히데나가의 삶을 주시했다.

 

아베 정부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인 손타쿠’(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특히 관료들이 알아서 정부 핵심 인사의 눈치를 보는 문화)의 중심에도 스가가 있었다. 스가는 고위 관료들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정부에 충성하도록 철저하게 길들였다. 지난 20145월 내각인사국을 만들어 심의관 이상 600여명의 고위 관료 인사권을 총리관저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2인자에 머물다 1인자로 올라선 스가 총재가 풀어야 할 과제도 상당하다. 이번 스가의 승리는 파벌의 힘을 부정하기 힘들다. 자민당 내 7개 파벌 중 5곳이 지지를 밝히면서 총재에 이어 총리까지 일찌감치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당내 기반이 약한 스가 총재가 파벌들과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가 스가 정권의 과제가 될 것이다.

 

당초 그는 아베 총리의 남은 임기 1년을 이어받아 차기 총선 때까지 자민당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스가 총재가 양원 총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선출됨에 따라, 징검다리 총리를 넘어서기 위해 이르면 연내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실제 스가는 총리로 취임하기 전인 910일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필요성과 관련 해산은 총리의 전권사항이다. 새 내각 총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해 의회 해산 여지를 열어뒀다. 결국은 조기 총선에서 자기지지 기반이 확고해지면 관리형 총리가 아닌 실질적 스가의 색깔이 노정될 것이다.

 

▲ 오랜 기간 아베 정권에서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의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스가 총리가 큰 틀에서 아베 정권을 계승하게 될 것은 자연스런 예측이다.


한일 관계일정기간 개선 어렵다.

 

아베 총리가 약 7년 반의 임기를 마치고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한일 관계 개선 여부에 대한 여러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실제 양국 관계의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스가 장관이 재임 시절 사실상 아베 총리의 입 역할을 해왔고 한일 간 관계에서도 전면에 나선 적이 상당하여 당장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913일 일본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은 전날 개최된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 스가는 외교에는 연속성이 중요하다. 아베 총리가 펼친 정상 외교는 매우 훌륭하다. 아베 총리와 상담하면서 가겠다고 말해 기존 일본의 외교 방침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상당히 냉정하고 차분한 성격의 스가는 현실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다. 다만, 아베 총리가 국가주의의 신봉자라면 스가 차기 총리는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만류한 전력도 있는 등 실용적 균형감각을 갖췄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스가는 장기적인 국익 관점에서 볼 때 한·일관계의 강대강구도가 ··관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저감하려는 노력과 함께 한일관계의 안정화 내지는 개선의 필요성을 숙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가의 정치 인맥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등 지한파 의원들과의 친분 관계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연립여당 공명당과의 협력관계 등을 주시하면서, 스가총리가 적극적 대화와 실질적 타협을 통해 한일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

 

한일 현안에 대한 접근은 경협 등 실질협력과 과거사 투트랙이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를 비롯한 경제문제와 미·중 무역 갈등이나 북핵 등 안보문제 등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한·일 양국이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국익 극대화의 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양국 간 일촉즉발 시험대인 역사문제는 강경일변도가 아니라 인내심 있는 계속적 대화를 통해 풀어가야 한다. 상호 치밀하게 논의하되, 상호 이익의 접점화를 극대화 하는 전략이 한층 요망된다. ‘이념형 외교에 치우쳤던 전임 아베 총리와 차별화 되는 실사구시형 외교를 스가 신임 총리에게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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